[Joshua]QT (에스라7:11-28)

변방의 노예 출신의 족속이 자신들의 사원을 재건하는 일에 페르시아 제국의 왕이 조서를 써서 그 일을 허락하고 은금을 내어주며 리더를 세우고 그를 따르도록 하는 권위를 세워주는 일을 이해하기 쉽지 않습니다.  

페르시아 왕이 여호와를 이렇게 인정할진대 왜 그는 유대교에 입교하지 않았을까요? 

 

이방 신을 섬기는 페르시아 왕 밑에서 매국노처럼 충성을 다하던 자가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고 성전을 재건하고 성벽을 다시 세우며 백성들을 가르치는 자가 된다는 것은 더욱더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입니다.

 

예레미아, 다니엘, 스룹바벨, 에스라, 느헤미아...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 성전과 성벽을 회복하고 그들의 신앙을 회복하는 과정에서 세상 권세자들과 그들에게 충성한 자들을 통해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서 난해한 점이 많았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국수주의적인 사고와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자기 가치로 구분하는 습관 덕분에 이런 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세상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당신이 세우신 권세자들에게 충성해야 하고 그들을 통해서 당신의 선하신 일들을 해 나가시는 것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음에도 우리는 사람의 정의와 판단 때문에 반감을 가지기도 합니다. 

이것은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인 일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세우신 권세자들에게는 다니엘처럼 어떤 때에는 그보다 큰 본래의 주권자인 하나님의 법에 따라 항거해야 할까요?

 

그것을 분별하는 정도가 영성의 현주소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다니엘은 너무 명확하게 충성할 일과 항거 해야 할 일을 알았습니다. 

이러한 점을 판단하기 어려운 저는 너무나 수준 이하인 것이 분명합니다.

 

주님, 주님이 주권이 어떻게 작동하는 제가 보았습니다. 제가 주님의 질서에 철저히 복종하는 자게 되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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