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hua]QT (신명기4:15-31)

어쩌면 모든 죄는 우상숭배로 귀결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결국, 탐심도 허망한 뭔가를 탐하여 숭배하는 일이요, 정욕도 자신의 쾌락을 숭배하게 되는 일이며, 분을 내며 남을 해하는 일도 자신의 감정을 숭배하는 일이니까요. 

 

요즘처럼 이렇게 우상숭배의 진상이 자세히 드러나는 때가 있었을까요? 

우리는 진실로 우리 자신을 보다 명백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은혜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온전하게 성화 되어 있나요?

 

우리는 여전히 같은 죄를 수없이 반복하고 있거나 어느덧 벗어났나 싶었는데 다시 더 깊은 구렁텅이로 들어가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됩니다. , 

자신은 예외로서 독보적이라고 생각한다면 더 위험한 길을 걷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그러한 우리에게 뭔가 새로운 도전의 희망을 주는 주님의 호소가 담겨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 모든 불신앙과 불순종을 주님은 이미 다 알고 계십니다 (28절) 

동시에 그들을 죄악중에서 구원하실 것도 알고 계십니다. (29절)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여호와 하나님은 그들과 일종의 거래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미 돌보시고 구원하시려고 일방적으로 작정하신 분이십니다. 놀라울 뿐입니다.

 

우리가 가진 그 진절머리 나는 죄악이 우상숭배로 귀결되는 것은 진실로 우리가 하나님을 찾아 해매는 존재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임을 깊이 묵상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한 깨달음에서 솟아나는 깊은 신뢰는 무작정 최선을 다 해서 죄를 짓지 않으려는 허망한 노력보다 포괄적이고 본질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만을 숭배해야만 하는 존재로 지음을 받았고 그것이 우리를 온전하게 하고 만족하게 합니다. 

그러니 죄의 절망 속에서 앉아 있지만 말고 다시 손을 뻗어 주님을 바라고 주님이 주시는 은혜를 죄 보다 더 갈망해서 자신도 모르게 쉬지 않고 주님께 달려가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그것은 종으로서가 아니라 자녀로서 가진 굳건한 신뢰의 기반 위에서만이 가능한 일입니다.

 

아버지, 이스라엘의 아버지여, 나의 아버지여!

 


Photo by Cherry Laithang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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